현재의 방향으로 나아갈 때 미래가 어떤 모습을 띠게 될 지를 마음속으로 그려볼 수 있다면 아마도 우리는 삶에 대해서 좀 더 진지한 자세를 갖게 될 것이다. 다음의 이야기는 절박성에 대한 감각을 갖지 못했을 때 어떤 결과를 맞게 될는지를 잘 보여 준다.
어느 날 한 남자가 나이아가라 강에 띄운 작은 보트 위에 앉아 있었다. 강물은 잔잔하였고 바람은 부드러웠으며 태양은 맑게 개인 하늘에서 빛나고 있었다. 이 남자는 방금 전에 강둑에서 보트를 띄웠는데 지금도 강변은 불과 몇 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는다. 아무리 보아도 근심할 일이 없다. 낚시 바늘에 미끼를 달고 물속에 낚싯줄을 드리우자 그의 마음은 떠돌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작은 보트도 떠돌기 시작했다. 보트는 잔잔한 조류를 따라 떠내려갔지만 처음에는 움직임이 느려서 알아챌 수 없었다. 하지만 어떤 것이든 최종적으로 도착하는 지점이 있게 마련이고 방향을 바로 잡지 않으면 어떤 보이지 않는 힘에 밀려 그 지점으로 움직이게 된다.
정신이 팔려 있던 이 남자는 보트의 움직임이 커지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그는 여전히 지난 주 내내 고대하고 있었던 낚시에 정신이 쏠려 있다. 정신을 차릴 시간은 충분히 있다. 잠시 동안이나마 그는 휴식을 취하며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삶의 고뇌를 잊고 표류하면서 시간을 보낼 것이다.
느닷없이 그의 마음은 동요한다. 어딘가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처음에는 멀리서 들려오다가 눈 깜짝할 사이에 이제는 귀청이 터질 듯이 울린다. 정신이 든 것은 소리 때문만이 아니다. 보트가 이제는 더 이상 부드럽지도 고요하지도 않은 물결 속으로 빨려 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고 나서야 강둑이 저절로 멀리 달아난 것처럼 멀어진 것을 처음으로 깨닫는다. 그는 모터 장치도 없고 노도 없이 보트를 띄웠던 것이다. 모터나 노가 필요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 애쓴다. 그것은 마치 맑고 평온하고 안전한 환경으로부터, 통제의 한계를 넘어선, 광포하게 휘몰아치는 상황으로 건너뛴 것과 같았다.
한 순간 그가 처한 상황의 현실이 뚜렷이 떠오른다. 우레와 같은 소리, 솟아오르는 거품, 소용돌이치는 안개,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돌진하는 보트가 순간적으로 무시무시한 상황을 그려낸다. 자기 자신과 작은 보트는 어느 사이에 나이아가라 강 밑으로 거대하게 떨어져 내리는 폭포의 문턱에 놓이게 된 것이다.
그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생각과 감정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사태를 미리 예측할 수 있었던들…! 만약을 대비해서 보트에 모터를 달았던들…! 좀 더 일찍 상황을 깨달았던들…!
그 남자는 그제서야 양쪽 강둑에 사람들이 모여 서 있는 것을 알아차린다. 보트가 폭포를 향해서 떠내려가고 있다는 얘기가 금새 퍼졌던 것이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이 절망적인 사람을 도와주고 싶었지만 섣불리 구하려 하다가는 자신들의 목숨이 위험에 질 것이다.
그들 중에는 로프를 던지거나 나뭇가지를 내미는 사람도 있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고, 대부분은 아연질색 하여 침묵한 채로 서 있다. 이들은 일어나지 않아도 좋았을 비극을 목격하고 있는 것이다.
일순간 남자는 자신의 나태가 가져온 피할 수 없는 운명을 감지한다. 그는 자신의 존재와 기회와 능력을 통째로 삼켜버리고 그의 모든 꿈을 한 순간에 끝장내버릴 힘을 지닌 환경 속에서 한눈을 팔고 주의를 게을리 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그의 머릿속에 마지막으로 떠오른 생각은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떻게 했을까 하는 것이다. 그의 생각은 폭포 가장자리에서 천길 아래의 최종 목적지로 쏜살같이 떨어지는 물처럼 빠른 속도로 그의 마음속을 달려간다.
그에게 다시 한 번 기회가 주어진다면 미래에 있을 재앙을 미리 예측해 보았을 것이다. 그는 현실 속에서 실제로 벌어진 사건을 미리 마음속에서 그려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나태의 결과를 미리 예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마음의 눈으로 그는 솟아오르는 거품을 보고 폭포의 굉음을 듣고 돌진하는 표류를 감지하여 지체 없이 안전한 강가로 돌아오는 조치를 취했을 것이다.
만일 그가 물에 빠지지 않고 구출되었더라면 그는 자신의 재능과 기회와 시간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했을 것이다. 하찮은 일에 한눈을 팔거나 느긋하게 쉬고 싶은 욕구 때문에 행동과 발전이라고 하는 더 소중한 일을 잊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이미 시간을 다 써버렸다.
우리의 삶도 이와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우리는 이 순간조차도 모두 어떤 방향으로 떠내려가고 있다. 우리가 그나마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일은 이대로 가면 어디에 다다를 것인가 하는 것뿐이다. 이것을 변화시키기에 충분한 시간이 아직 남아 있는가 하는 것은 결코 알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과거의 행동 때문에 자신의 미래가 수렁에 빠질 위험에 처해 있는데도 즉각적인 조치를 취해서 이것을 바로 잡으려 하지 않고 있다. 이들은 나태의 표류가 그대로 계속되도록 내버려 두고 있다. 이들은 여흥에의 욕구가 교육에의 갈망을 정복하도록 방치한다.
찾아 나서는 것이 아니라 길을 잃고 만다. 이들은 작은 실수나 태만이나 판단 착오가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아직도 만사가 서로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오늘의 행동이 내일의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이들의 부주의한 행동과 종잡을 수 없는 생각이 이들의 가장 소중한 자원인 시간을 집어삼키고 있다. 시간이 너무 많아서 헛된 세월이 흐르는 동안 기회의 매 순간을 어느덧 흘려버린 결과이다. 그래서 ‘랑케’는 현실은 과거에 대한 결과이며, 현실은 미래에 대한 예측이라고 말했다.
우리의 철학은 우리를 특정한 미래의 상황으로 몰고 간다. 현재의 태도나 행동이나 결과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현재의 우리의 라이프 스타일은 우리를 고무시켜 새로운 정신적 체험을 겪게 하든지 아니면 아무렇게나 떠내려가도록 내버려두도록 부추긴다.
현재의 우리 모습과 상태는 우리의 목표에 비추어서, 똑딱거리는 시계를 의식하면서 검토되어야 한다. 어쩌면 시간이 몇 해밖에 남지 않았을 수도 있고, 몇 달밖에 남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시계가 마지막 종을 울릴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는 것보다는 남은 시간 동안 무언가 건설적인 일을 하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우리는 할 수 있다. 우리는 스스로 자신의 삶을 바꿀 수 있다. 이것은 절실함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당장 시작될 수 있다. 시계는 늘 째깍거리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지금 당장 시작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성취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내년에도 지금과 같은 한숨을 쉬지 않기 위해서, 5년 뒤에도 지금과 별반 차이 없는 인생이 되지 않기 위해서, 10년 뒤에 뒤안길로 쓸쓸하게 물러나야 하는 슬픈 중년이 되지 않기 위해서, 나 자신과 가족들과 친지들에게 부끄럼 없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불가능한 꿈을 꾸자’고 말했던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처럼 우리 모두 절박함의 법칙을 깨우칠 삶의 안전 지대에서 벗어나 보자.
최범식 수석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