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럼통에 보관된 GBL(사진 연합뉴스)
미국에서 활동하는 국제 마약조직과 공모해 이른바 '물뽕'이라고 불리는 GHB의 원료물질인 GBL을 미국과 호주 등지로 수출한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1군 임시마약류 지정 물질을 대량으로 해외에 수출한 이들을 적발한 것은 사상 처음으로, 과거 마약청정국으로 불렸던 대한민국이 이제는 마약수출국으로 전락한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온다.
압수수색 현장(사진 연합뉴스)
경기남부경찰청 광역수사단 마약범죄수사대는 영리 목적 임시마약류 수출 혐의로 30대 여성 A씨와 사실혼 관계인 20대 B씨를 구속해 검찰에 송치했다고 30일 밝혔다.
또 같은 혐의로 A씨의 가족 및 친구 관계인 3명을 불구속 상태로 검찰에 넘겼다.
A씨 등은 지난해 6월부터 올해 6월까지 자신들이 운영하는 의왕시 소재 미용용품 수출업체에서 시가 159억원 상당의 GBL 8t(800만명 동시투약분)을 72차례에 걸쳐 미국 캘리포니아주 등지에 밀수출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는 GBL 1ℓ(ℓ당 1㎏으로 계산)당 시가 1천400달러를 총 수출량인 8t(8천㎏)으로 곱해 달러당 환율(1천420원)로 계산한 액수이다.
속눈썹이나 가발 접착제를 지우는 리무버를 수출하는 업체를 운영했던 A씨는 영업이 잘 안되자 지인의 동종업체에서 일하던 중 바이어로 가장한 미국의 마약상과 만나게 됐다.
압수물 전체(사진 연합뉴스)
그는 이 자리에서 리무버의 원료가 되는 GBL에 대한 미국 내 수요가 상당하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 이들이 GBL 원액에 대한 수출을 요구하자 본격적으로 밀수출 범행을 계획했다.
A씨는 일을 그만두고 원래 자신이 운영하던 의왕시 소재 업체로 돌아가 국내 GBL 수입업자로부터 GBL을 구매하기 위한 절차에 들어갔다.
그는 '미용용품 제조·수출업'이 명시된 사업자등록증과 타인의 사업장에서 촬영한 생산 장비 등 사진을 첨부한 서류를 근거로 제시해 어렵지 않게 수입업자에게서 GBL을 사들일 수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A씨는 공범들을 동원해 드럼통째 들여온 GBL을 1ℓ짜리 플라스틱병에 소분한 뒤 정상적인 리무버 제품인 것처럼 허위의 성분분석표 등이 담겨 있는 라벨을 부착해 밀수출했다.
이렇게 미국 캘리포니아 등지로 팔려나간 GBL은 멕시코 카르텔과 연계한 미국 내 국제 마약조직 의해 미국 전역에 유통된 것으로 파악됐다.
1년여간 이어져 오던 A씨 일당의 범죄는 호주 연방경찰(국경수비대)이 제공한 첩보로 꼬리가 잡혔다.
A씨 등은 범행 과정에서 호주로도 GBL 23㎏가량을 5차례에 걸쳐 밀수출했는데, 국제항공 화물로 들어온 GBL을 호주 국경수비대가 지난해 7월 적발해 압수한 것이다.
경찰은 한국 경찰청이 펀딩하고, 7개국(한국·미국·호주·태국·미얀마·베트남·캄보디아)이 참여하는 인터폴 마약 공조작전인 'LIONFISH-MAYAGⅡ' 프로젝트를 추진해 오던 중 호주 국경수비대로부터 "한국 업체가 국제항공 화물로 발송한 GBL을 압수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미국 마약단속국(DEA)과 관세청과 공조를 통해 이 업체가 A씨가 운영하는 미용용품 수출업체이며, 호주에 앞서 미국에도 대량의 GBL을 밀수출한 정황을 포착했다.
이런 가운데 DEA는 지난 1월 미국 내에서 A씨가 밀수출한 GBL을 몰래 들여온 마약상을 검거해 이번 사건의 직접적인 증거를 확보했다.
이어 경찰은 미국 연방검사와 DEA 본부 및 워싱턴 지국 특별수사관의 방한에 이어 뉴욕 지국 관계자의 방한으로 잇달아 공조 회의를 하면서 A씨 일당의 혐의 입증에 주력했다.
경찰은 이를 바탕으로 지난 7월 A씨 등을 전원 검거하고, 현장에서 GBL 1천382㎏을 압수했다. 아울러 범죄수익 18억2천여만원에 대한 기소 전 추징 보전을 신청했다.
경찰은 범죄수익 규모가 이보다 더 클 것으로 보고 있다.
GBL 수입업자의 GBL 공급가는 1ℓ당 1만3천~1만7천원 수준이었는데, A씨의 밀수출 단가는 ℓ당 250달러(35만5천원)으로 껑충 뛰었다. 미국에서의 유통 시가는 ℓ당 1천400달러(198만8천원)으로 여기서 다시 다섯 곱절 이상이 됐다고 한다.
경찰 확인 결과 A씨는 GBL 호주 수출 혐의로 지난 3월에 경찰 조사를 받기 전까지는 자신의 명의로 된 업체만 운영하다가 수사망이 좁혀오자 친척 명의로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해 같은 방식으로 범행을 지속하며 이득을 불린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호주 국경수비대로부터 첩보를 입수한 전후 상황을 종합해 A씨 등의 범죄 사실을 구성하고 사건을 검찰에 넘겼다.
이 밖에 경찰은 추가 수사를 통해 A씨에게 GBL 1천400㎏을 판매하면서 거래 기록을 작성·보존하지 않은 수입중개업체 대표를 입건해 송치했으며, 오픈마켓에서 GBL을 매수·소지한 7명을 검거해 이 중 혐의가 중한 1명을 구속해 송치했다.
1군 임시마약류로 지정된 위험 물질을 국내에서 해외로 수출한 일당이 당국에 적발된 것은 이번이 사상 처음이라고 경찰은 전했다.
임시마약류란 마약류가 아닌 물질 중 오남용으로 인한 보건상의 위해가 우려돼 긴급히 마약류에 준하여 취급·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되는 물질이다.
이 중 1군 임시마약류로 분류되는 것은 중추신경계에 작용하거나 마약류와 유사성을 지닌 물질로 의존성을 유발하는 등 신체적·정신적 위해를 끼칠 가능성이 크다.
경찰 관계자는 "해외 수사기관뿐 아니라 국내 유관기관과 협업해 마약류 수출 및 반입에 대한 수사를 계속할 것"이라고 했다.
DEA는 브리핑 자료에서 "전례 없는 성과를 가져온 한국 경찰청의 전문성과 수사 역량에 감사드린다"며 "미국 내 유통망과 공범에 대해 가까운 시일 내 추가 단속이 예상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