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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칼럼

미인 며느리를 이용한 처칠 영국수상

미인 며느리를 이용한 처칠 이야기

                      

영국수상이었던 윈스턴 처칠(1874~1965) 은 이승만(1875~1965)과 1살 차이로 같은 해 세상을 떠났다. 처칠은 1933년 독일의 히틀러가 집권하자 나치 독일이 조만간 영국을 공습할 것이라며 영국공군을 강화해 야 한다는 의견을 내지만 당시 평화를 바라던 영국 정계에 의해 무시된다. 하지만 히틀러가 영국을 공격하여 처칠의 예견이 옳다는 것이 입증되고 결국 그는 영국수상에 임명된다.

 

1940년 5월 13일 처칠은 의회에서 "나에게 는 피와 수고와 눈물과 땀 이외에는 내놓을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연설을 한 뒤 수상에 취임한다. 그리고 6월 4일 다음과 같은 유명한 대국민 연설로 독일 폭격에 연일 시달리는 영국민들의 사기를 북돋아준다.

 

"대가가 어떤 것이든 간에 우리들은 바닷가 에서 싸울 것이다. 상륙 지점에서 싸울 것이다. 들판과 시가지에서도 싸울 것이다. 구릉지에서도 싸울 것이다. 우리들은 결코 항복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 라도 승리요, 어떤 공포에서도 승리요, 그 길이 아무리 멀고 험해도 승리해야 한다. 승리 없이는 생존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1941년, 처칠은 미국의 참전 없이는 도저히 나치독일에게 이길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러나 당시 미국은 참전의사가 전혀 없었다. 그래서 고민에 빠진 처칠이 고안해 낸 것이 '미인계'였다.

 

1941년 처칠은 미국의 참전을 유도하고자 루스벨트 대통령 측근이자 미국의 유럽 특사 에브럴 해리만(1891~1986)에게 자신의 며느리 파멜라처칠(1920~1997)을 접근 시킨다. 처칠은 해리만을 런던 도체스터 호텔의 만찬에 초대하면서 며느리 파멜라와 동행한다. 만찬 진행 중 갑자기 독일공습이 시작되었다. 파멜라에게 한눈에 반한 해리만은 지하벙커로 피난 가는 대신 자신의 방으로 그녀를 초대한다. 처칠의 계산대로 된 것이다. 결국 해리만과 파멜라는 런던 공습 중에 사랑을 나누고 연인으로 발전한다.

 

그 후 처칠은 며느리 파멜라를 이용해 수시로 미국에 대한 고급정보를 빼내고 결국 미국이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도록 유도하는데 성공한다.

 

한편 1942년 봄, 2차 대전에 참전했다가 휴가차 집에 돌아온 처칠 수상의 아들 란돌프(1911~1968)는 아내의 불륜과 그 불륜을 아버지 처칠 수상이 사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란돌프는 결국 아내와 이혼하고 아버지 처칠과도 평생 소원해 진다.

 

파멜라 처칠은 당시 영국 특파원이었던 미국 언론인 애드워드 머로(1908~1965) 와도 가깝게 지내기 시작해 1943년에는 연인 관계로 발전한다. 머로는 미국의 방송기자로 2차대전 당시 현장 라디오 뉴스를 진행해 수 백 만 명의 청취자를 거느렸던 앵커다.

 

제2차세계대전 초기 독일의 영국 본토 항공 전을 중계한 그의 방송은 실로 대단했다. 머로는 2차 대전 초기 독일공군의 야간 공습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마이크를 들고 건물 옥상 위에 올라가 공습상황을 라디오로 생중계했다. 이 현장중계는 2차 대전 참전에 부정적이던 미국 내 여론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다.

 

한편 파멜라 처칠은 1952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고 2차 대전 당시 연인이었던 에브럴 해리만과 1970년 결혼한다. 1971년 미국 시민으로 귀화한 그녀는 민주당에서 정치적 대모로 활약한다. 그녀는 1981년 무명의 빌 클린턴을 만나 그의 잠재성을 알아보고 이후 클린턴을 대통령에 당선 시키는데 큰 공적을 세운다.

 

그래서 파멜라는 '빌 클린턴의 엄마'라고 불리기도 했다. 파멜라 덕에 대통령에 당선 된 클린턴은 파멜라를 프랑스 대사로 임명 한다. 1997년 파멜라가 급작스레 사망하자 클린턴은 대통령 전용기를 프랑스로 보내 파멜라의 시신을 미국으로 모셔온 후 국장 으로 예우를 갖춘다. 1997년 장례식장에서 클린턴 대통령은 "그녀(파멜라)가 없었다면 오늘의 저는 없었을 것입니다"라고 그녀의 역할에 찬사를 표했다.

 

나라가 전쟁의 광기에 빠지고 사회가 극심한 혼란에 빠졌을 때 이승만과 처칠은 둘 다 미인계를 이용해 난국을 극복하고자 했다. 그 와중에 이승만은 자신을 위해 몸 바쳐 일하던 김수임을 냉혹하게 처형했다.

 

반면 처칠은 자기 며느리를 도구로 삼아 2차 대전의 참전을 꺼리던 미국의 참전을 유도하는데 성공했고 결국 히틀러를 패망시키고 2차 대전을 연합국의 승리로 이끌었다. 국가의 존망과 안녕을 위해 며느리를 이용하고 자기 아들의 가정을 파괴한 처칠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참고로 지난 2002년 10월 영국 방송은 영국인 100만 명을 대상으로 한 달간 여론 조사를 벌여 '위대한 영국인 Great  Britons' 100명을 선정했다. 그 중 윈스턴 처칠은 전체 응답자의 28.1%의 지지를 얻으며 '가장 위대한 영국인' 1위에 올랐다.

 

오늘도 국가의 발전과 안녕을 위해 무엇인가 노력해보는 화요일이 되시기를 응원합니다.

 

츌처 사)독도사랑회 사무총장/박철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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