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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칼럼

안전에 투자하지 않은 세월호의 참사

사고가 나고 보니 해운이 엉망이라는 얘기들을 한다. 마피아 이야기도 나오고... 근데 해운은 태생이 위험한 분야다. 중세 유럽인들은 동방과의 무역을 통해 떼부자가 될 방법을 알았지만 항해의 성공을 장담하기에는 그 위험 정도가 너무 커서 위험성 분산을 위해 오늘날 주식회사의 모태가 되는 투자 방법을 고안해낸다.

배 한 척에 한 명이 투자하는 것은 위험이지만 배 10척에 10명이 투자하면 그건 확실한 수익이다. 10척 중에 한 척만 무역에 성공해도 이윤이 보장되었을게다. 그리고 이런 사업은 당연히 폐쇄적으로 운영되었다. 지금이야 상관없지만 먼저 항로를 개발했다고 우선권을 주장할 정도였으니...

 각설하고, 해상에서 무수한 사고를 경험한 인류는 이를 바탕으로 안전한 선박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해왔다. 선박은 건조 단계에서 매우 엄격한 규정의 적용을 받는다. 제가 하는 얘기의 기준은 국제항해에 종사하는 화물선 기준이니 가려서 들어 주시길... 1급 항해사 선장의 경험을 걸고 얘기하건데 선박은 교통 수단 중 가장 안전하다. 단, 이걸 운용하는 사람들이 문제다. 특히나 선주와 선장.

선박의 외판에는 만재흘수선이라고 하여 이 기준 이상으로 승객이나 화물을 실을 수 없는 지점이 표시되어 있다. 선체 중앙부에는 동그라미와 선으로 이루어진 표시가 있는데, 프림솔 마크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도 과적을 해서 승무원들이 위험에 빠지는 경우가 많자 프림솔 백작이라는 양반이 이의 적용을 주장했기에 붙은 이름이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뭐 대동 소이하다.

이처럼 이익을 최대화하고 싶은 욕심을 각종 규정으로 틀어막아 온 게 해운과 선박의 역사다. 유조선의 경우 기름을 적게 적재하더라도 오염사고를 줄이기 위해 탱크가 직접 바다와 접하지 않도록 이중으로 건조하게 된 것도 최근의 일이다. 이외에도 여러가지가 있지만 핵심은 화물이나 승객을 덜 싣더라도 선박을 안전하게 만들어 인명을 지키자는 것이다.

해양에는 4개의 기둥(4 Pillar)이라 일컬어지는 국제 협약이 있다. 해상인명안전협약, 해양오염방지협약, 선원의 훈련 및 자격증명에 관한 협약 및 해상노동자 협약이다. 대부분 엄청난 해난 사고들을 겪으면서 만들어지고 개정되어 온 협약들이다. 4개의 협약이지만 추려보자면 인명안전과 환경보호를 위한 것들이다. 그 중에서도 인명은 최우선 순위여서 긴급시에는 오염을 발생시켜도 된다는 단서가 있다.

그런데 이 협약들을 잘 지키려면 돈이 들어간다. 그것도 많이. 국제 협약이니 모두가 지킨다면 공정한 게임이 되겠지만 투자 없이 수익을 얻고자 하는 유혹이 없을 수 없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각국은 기항하는 외국적 선박에 대한 항만국통제(Port State Control)를 해서 규정 준수 여부와 기준미달선(Sub-Standard Vessel)을 걸러낸다.

물론 일부 악랄한 국가 또는 특정 검사관들이 지위를 이용하여 뒷돈을 받거나 부당한 지적을 하기도 한다. 수 백억에서 수 천억 짜리 배가 억류를 당하면 손실이 엄청나기에 가능하면 제대로 된 조건으로 운항하려는 것이 제대로 된 회사들의 방식이다. 당연하게도 이런 검사가 음성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지는 곳으로만 기준미달선을 투입하여 이득을 획책하는 선사도 존재한다. 18색 크레파스들...

안전 관리는 사실 최고 경영자의 의지다. 말로만 안전 안전 하면서 인적/물적 자원 투입을 하지 않는 경영자는 최악이다. 사고가 발생하면 책임을 묻기에 바쁘다. 내가 강조했는데 뭐했냐는 식이다. 이거 어디서 많이 보고 들은 방식 아닌가? 세월호 사건에서 기시감을 느끼는 건 안전 분야에 조금이라도 종사해 본 사람이라면 비슷할 것이다.

대부분의 사고는 인적 과실로 인해 발생하는데 이걸 단순히 안전불감증이거나 개인의 과실/실수로 치부하면 사고는 예방할 수 없다. 인적 과실이 발생한 근본 원인을 짚고 그걸 해결하기 위한 투자가 필요하다. Physical Barrier라 부르는 물적인 투자는 인적 과실을 예방하기 위해 특히 필요하지만 보통 경영층은 이걸 낭비로 본다.

전기는 감전 위험이 있으니 피복으로 감싼다. 이때 피복이 P.B인 것이다. 피복없는 전선에 감전된 것을 개인의 실수로 몰고 가면 안된다는 얘기다.

소말리아 해적이 위험한 건 다 안다. 그래서 무장용병을 태우는 것이 최선의 예방책이다. 그런데 해적 피습은 확률적으로 굉장히 낮다. 전세계 물동량의 30%가 이동하는 해역에서 발생률로만 따지자면... 그래서 일부 용감한(?) 회사는 용병을 태우지 않는다.

해적 승선을 저지할 철조망이나 물대포 혹은 방탄복 등도 지급하지 않는다. 이럴 경우 공격에 노출되면 거의 피랍으로 연결된다. 무기도 없는 선장이나 승무원이 아무리 조심한들 피할 수 없는 문제인 것이다.

인적 자원 또한 마찬가지다. 훈련이나 교육은 모두 비용을 수반한다. 청해진 해운의 경우 연간 1인당 교육비가 스벅 커피 한 잔 값도 안된다. 훈련된 인력이 계속 재직하는 것도 아니니 선사의 경우 이걸 낭비로 볼 수도 있겠지만 제대로 된 경영층은 끊임없는 교육과 훈련을 반복한다.

위기의 순간에는 머리로 판단하는 게 아니라 습관화된 근육이 움직여야 한다. 사고를 겪어보았는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 당사자가 되면 패닉을 경험한다. 훈련되지 않은 인력이라면 자신의 안전도 담보하기 힘든데 누굴 통제하고 지휘하겠는가.

인적과실 중에 꼭 언급하고 싶은 게 하나 있다. 피로다. 피로는 대형 해난 사고의 50% 이상에서 발견되는 잠재원인이다. 근데... 이 피로의 배경에는 뭐가 있을까? 이것 역시 비용이다. 세월호의 인적 구성과 항로를 보면 구조적으로 피로가 누적되게 되어 있다.

충분하지 못한 인력으로 무리하게 운항을 지속한 것이고 이러다 보니 우수한 인력이 그 회사에 붙어 있을 까닭이 없다.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된 것이다. 집중력. 판단력을 극히 저하시키는 피로는 책임감도 흐리게 할 것이고, 당연히 해야 할 점검이나 훈련은 뒷전에 미루게 한다. 당장 눈에 보이는 하자가 아니니까...

이런 문제 때문에 해상노동자 협약에서는 최소 휴식시간을 준수하도록 규제하고 있는데, 모르긴 몰라도 국내법 수용과정에서 내항선에는 많이 완화되었거나 면제되었을 것이다. 배경은 빤하다. 영세사업자의 경영 여건을 더 악화 시킬 우려가 있고 고용에 애로를 겪는다는 둥. 그러면 사업을 접어야지 왜 그딴 식으로 접근하는가? 그리고 근로조건이 좋아지면 왜 지원을 안하겠는가?

육상에 일자리 없어서 아우성인데 고용 창출도 되고 일석이조 아닌가. 모든 논리가 자본가 입장에서 형성되다 보니 오늘날 내항선 업계가 이모양 이꼴로 전락한 것이다.

사고가 나면 선장 탓, 관리자 탓을 하는 게 우선인데 그 깊숙한 근본에는 자본의 논리가 숨어있다. 더 큰 손실을 불러오는데도 당장 눈 앞의 단기적 이익에 집착하는 근성. 안전관리를 담당하게 되면 한직으로 밀린 것으로 치부하는 문화. 안전관리자의 개선 의견이나 예방 대책은 비용을 수반한다거나 자신의 부서에 방해된다는 인식 등은 우리가 반드시 고쳐야 할 악습이다.

당신은 직장 주변에서 강하게 밀어붙이다가 피해를 입는 안전관리자를 본 적이 없는가? 나는 많이 보았다. 우리 모두가 공범이다. 안전관리자가 바지 사장 처럼 사고가 나면 책임지우기 위해 존재하는 자리가 되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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