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학기제가 올해 전국 중학교에서 전면 시행되면서 일선 학교 현장에서 준비 부족으로 인한 부실 운영 행태가 속속 포착되고 있다. 정원이 한정된 프로그램에 신청이 몰리면서 어린 학생들에게 '가위바위보'로 진로 프로그램을 선택하게 하는 황당한 상황이 연출되는가 하면 강남·북 등 지역 간에도 프로그램의 질과 양이 현저한 차이를 보여 학부모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심지어 현장 교사들에게서조차 "이게 학생들을 위한 올바른 교육인지 자괴감이 든다"는 한숨이 나올 정도다.
지난 5월 서울 강북 지역 B중학교에서 자유학기제 진로 프로그램에 동행한 조 모 교사(28)는 학생들에게 제공되는 진로 체험 현장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직업군인과 관련한 진로 체험장에 걸려 있던 것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사진이었다. 조 교사가 인솔해온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은 진로 교육 현장에 파견 나온 육군 하사의 지휘에 맞춰 사진을 향해 다트를 던졌다. 기대했던 직업군인에 대한 설명은 전무했고 다른 직업 체험장 역시 황당한 체험이 주를 이뤘다. 그는 "지역 구청에서 마련해 진행한 행사라 기대가 컸지만 막상 현장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며 "도대체 무슨 교육적 효과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유학기제는 아일랜드(전환학년제) 덴마크(애프터스쿨) 등 북유럽 국가에서 정착하는 데만 수십 년이 걸린 모델이지만 우리나라는 대선공약 이행이라는 이유로 3년 만에 전면 확대되면서 교육 현장에서 이 같은 부작용이 터져나오는 것이다.
특히 진로 체험 프로그램이 '지역사회 연계형'으로 진행되면서 제공되는 프로그램의 질적 격차가 크고 학교 규모에 따라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교사 인원에도 차이가 나 이 같은 불균형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2016년 서울형자유학기제 운영 매뉴얼에 따르면 지방 교육청은 학기 전 진로 프로그램 준비 단계에서부터 '지역사회 자원 발굴 및 유관기관과 협의체를 구성해 프로그램을 운영하라'는 권고를 내리고 있다. 주변 인프라가 확보되지 않은 지역의 교사들은 지방 교육청들이 지역사회 연계형 프로그램에 참여하도록 강요하면서 교육의 질이 전혀 확보되지 않은 현장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진로 프로그램 준비가 교과 수업을 담당하는 교사들에게 전가되는 상황도 공립과 사립 간 교육 수준을 크게 벌려놓고 있다. 교사 수가 부족한 일부 사립학교는 1~2명의 교사들이 업무를 맡는 반면 공립학교는 7~8명의 교사로 전담팀을 꾸려 운용 중이다. 사립학교에서 영어 교사로 재직 중인 박 모 교사(28)는 "교사 수가 부족하다 보니 영어 교사들마저 예체능 과목 진로 수업에 투입돼야 하는 형편"이라며 "진로 프로그램까지 준비하면서 사립학교 교사들은 정작 교과 수업에는 신경 쓸 틈이 없을 정도"라고 혀를 내둘렀다.
현장 교사들은 강남·북 등 지역 간 프로그램의 질도 다르다고 입을 모은다. 기업체, 전문직 종사자들이 다수 거주하는 강남 지역의 진로 프로그램을 강북 지역의 프로그램이 따라갈 수 없는 현실 등 자유학기제에서조차 피할 수 없는 교육의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강남 지역 C중학교는 의사, 검사, 생체공학자, 항공기 조종사, 첼리스트 등 전문직 학부모를 '명예교사'로 임명했다. 명예교사로 임명된 28명의 학부모들은 바쁜 시간을 쪼개 앞장서서 일터에서 직접 체험 현장을 이끌었다. 해당 자치구 내 연구기관, 광고기획사 등의 손길도 이어져 과학실험 교실, 광고 제작, 토크쇼 제작 등 이색적인 프로그램으로 양질의 교육 콘텐츠가 마련됐다는 평가가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