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독립을 선언하고, 헌법을 만든 필라델피아에서 새로운 역사가 탄생했다. 민주당은 26일(현지 시각) 필라델피아 웰스파고센터에서 주(州)별 경선 결과를 발표하는 '롤 콜(roll call)'을 통해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대통령 후보로 선출했다. 여성이 미국 주요 정당의 대통령 후보가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힐러리는 알파벳순으로 주별로 롤 콜을 시작한 지 1시간 15분 만에 대의원 과반인 2383명을 넘었다. 경쟁자였던 버니 샌더스(버몬트) 연방 상원 의원은 당의 단합을 위해 자신의 지역구인 버몬트 지역 경선 결과 발표를 마지막으로 해달라고 요청하고, 중간에 "사회자에게 제안한다. 롤 콜을 중단하고, 대의원들에게 찬반을 물어 (만장일치로) 힐러리 클린턴을 대통령 후보로 선출하자"고 제안했다. 주최 측이 대의원들에게 "힐러리 후보 지명을 찬성하느냐"고 묻자 대의원들은 "그렇다"고 답했다. 다양한 인종의 대의원들은 서로 포옹하며 힐러리의 승리를 축하했다. 샌더스 지지자 100여 명은 이에 반발해 대회장을 박차고 나갔지만 역부족이었다.
힐러리는 대통령 후보로 확정되자 트위터에 '역사(history)'라는 단어를 올렸다. 샌더스가 만장일치 추대를 제안하는 동영상도 함께 게시하면서 '함께하면 더 강하다(Stronger together)'는 대선 슬로건을 내걸었다. 경선 과정의 앙금을 씻고 민주당 지지 세력의 단합을 촉구하는 의미였다.
전당대회 이튿날의 하이라이트는 또 있었다. 힐러리의 남편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러브 스토리 찬조 연설'이었다. "1971년 한 소녀를 만났다"는 말로 시작한 빌은 "힐러리야말로 변화를 만들어내는 사람(change maker)"이라며 "세상에는 진짜(real one)와 가짜(made up)가 있는데, 여러분은 진짜를 대통령 후보로 지명했다"고 말해 청중의 환호를 받았다.
26일(현지 시각) 미국 펜실베이니아주(州) 필라델피아의 농구 경기장‘웰스파고 센터’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 이틀째 행사에서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미국 주요 정당 사상 최초의 여성 대선(大選) 후보로 선출되자 대의원들이 환호하고 있다.
빌은 연설 내내 자신이 겪었던 힐러리의 인간적 면모와 아이들을 위해 동분서주했던 사례를 소개하면서 그가 지속적으로 변화를 시도하고, 실제로 이뤄냈다는 점을 강조했다. 세 차례의 청혼 끝에 1975년 "가장 친한 친구와 결혼했다"던 그는 "딸 첼시를 낳았을 때가 내 인생의 최고였다"고 말해 청중의 감성을 자극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빌이 자신의 이야기를 일절 하지 않고 아내를 위해 연설한 것은 처음"이라며 "조용하면서도 때로는 감동적이고 때로는 세속적인 러브레터 같은 연설은 현대 전당대회에서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고 했다.
26일(현지 시각) 민주당 전당대회 이틀째 행사에서 찬조 연설자들이 민주당 대선 후보로 공식 지명된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위에서부터 역시계방향으로 힐러리의 남편인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 영화배우 메릴 스트리프.
이에 앞서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은 "트럼프는 이상하게 블라디미르 푸틴이나 김정은 같은 독재자들에게 감탄한다"며 "푸틴은 트럼프의 승리를 열렬히 원할 텐데 우려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영화배우인 메릴 스트리프는 "여성이 투표권을 얻은 지 100년 만에 여러분은 역사를 만들었다"며 "11월 대선에서 (힐러리를 당선시켜) 새로운 역사를 만들자"고 했다. 이날 찬조 연사로 백인 총격 등으로 사망한 흑인 청년들의 어머니 9명도 나와 비극을 없애려면 힐러리를 지원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힐러리는 일정이 끝나기 직전 영상 연결을 통해 깜짝인사를 했다. '남성' 대통령 사진들만 가득한 대형 스크린 화면을 산산조각 내면서 등장한 그는 "유리천장(보이지 않는 차별)에 가장 큰 금을 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다"며 "이 순간을 지켜보는 어린 소녀가 있다면 '다음 차례는 바로 여러분 중 한 명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대통령 후보는 됐지만 본선은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샌더스의 강력한 지원에도 그를 지지하는 젊은 층의 표심을 끌어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갤럽 조사에서 힐러리의 비(非)호감도가 57%를 기록해 역대 최악이었다. 여기에 경선 과정에서 힐러리에게 편파적 모습을 보인 당 지도부의 이메일을 폭로한 '위키리크스'가 추가 폭로를 예고하고 있어 힐러리 캠프를 긴장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