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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영유아 10억' 제시 옥시… "미국이면 총배상금 최소 1조 이상"


아타 울라시드 사프달 옥시레킷벤키저(현 RB코리아) 대표가 27일 서울 여의도 옥시 본사에서 열린 '국회 가습기살균제 사고 진상규명과 피해구제 및 재발방지 대책마련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징벌적손해배상제 적용시 1인 75억~100억" 추정
합의 통해 형사처벌 감면받기 위한 꼼수?

 "존슨앤존슨은 파우더 제품에 발암물질이 포함된 것을 알면서 팔다가 620억원이라는 배상금을 물었습니다. 옥시도 가습기살균제 성분의 유해성을 인식하고도 방치했으니 미국이라면 실제 피해액의 10배 배상을 적용받게 될 겁니다."(이창현 서강대 법학대학원교수)

"징벌적손해배상제에는 사후적 처벌 의미도 있지만 문을 닫아야 할 만큼의 배상금액을 물어야 할 수 있으니 사람 생명으로 장난치지 말라는 사전적 예방 측면이 더 강합니다. 옥시의 경우 죄질이 매우 좋지 않은 만큼 다른 기업들이 깜짝 놀랄 수준의 배상금액을 물릴 필요가 있습니다"(허윤 법무법인 예율 변호사)

◇ 사후적 처벌보다는 사전적 예방 취지

옥시레킷벤키저(현 PB코리아)가 가습기살균제 사건을 미국에서 저질렀다면 영유아 피해자 한 명당 75억원 상당, 총 1조원이 넘는 금액을 배상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징벌적손해배상제도는 기업의 행위로 소비자 등에 피해를 주었을 때 고의성이나 악의성이 입증될 경우 실제 발생한 손해액 외에 징벌적 성격의 배상금을 추가로 부과하는 제도다.

이 제도는 영미법 계열의 미국·캐나다·호주 등에서 먼저 도입됐고 중국도 기업을 대상으로 무한 징계성 배상을 요구하는 권리를 담은 '침권책임법'을 2010년 제정해 시행 중이다.

국내에서는 옥시 사건에 이어 폭스바겐 배출가스 조작 사건까지 터지면서 '제조물'에 대한 징벌적배상제 도입을 놓고 활발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2일 법조계와 업계에 따르면 옥시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에 대한 최종 배상안을 내놨지만 징벌적손해배상제가 적용되는 미국 사례와 비교하면 턱없이 적은 액수여서 반발을 부르고 있다.

옥시는 피해자가 부담한 총 치료비, 일실수입(다치거나 사망하지 않았을 경우 벌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수입) 등을 배상하고 정신적 고통에 따른 위자료를 최대 3억5000만원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또 사망·중상에 이른 영유아의 경우 위자료를 포함해 총 10억원으로 일괄 책정했다. 증세가 호전된 어린이는 성인처럼 치료비와 일실수입 등을 따로 산정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여러 법학 교수와 법조인들은 미국에서 사건이 발생했다면 옥시가 자체적으로 배상금액을 책정하지 못할 뿐 아니라 피해자 한 명당 70억~100억원 상당의 배상금액을 물어야 하는 것으로 봤다.

김차동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는 "그동안 옥시가 보여준 행동은 미국에서 천문학적인 배상금액이 나온 사례와 비교해도 악질적"이라며 "옥시가 책정한 한국적 기준에서 10배 배상을 대입해도 영유아 한 명당 75억원 정도를 배상해야하는 것으로 나온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미국에서도 실제 피해액의 10배 배상은 증거재판주의에 입각한 엄격한 절차를 거쳐 악의성이 입증될 때만 적용된다고 설명했다.

◇ 피해자 많아 배상액 수조원 달했을 수도

이창현 서강대 법학대학원 교수도 옥시 사건에 징벌적손해배상제가 적용됐을시 한 명당 배상금액은 70억~100억원 정도가 될 것으로 봤다.

이 교수는 "옥시 전 대표 등이 형사적 처벌을 감면받으려는 목적으로 피해자들과 합의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라며 "징벌적손해배상제도가 도입돼 있었으면 기업이 자체적으로 배상금액을 책정해 발표할 수도 없다"고 꼬집었다.

교수들이 입을 모아 제시한 영유아 한 명당 피해 배상액 75억원을 기준으로 세우면 옥시 사건으로 발생한 사망 피해자만 정부 기준 146명(1·2차 판정 530명)에 이르러 최소 1조원에서 많게는 수조원에 달하는 배상액을 물었어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실제로 미국의 경우 지난 5월 세인트루이스 지방법원 배심원단은 난소암에 걸린 한 여성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존슨앤존슨 측에 5500만달러(약 635억원)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직접적인 피해액은 500만 달러 정도지만 그 10배를 징벌적손해배상액으로 부과한 것이다. 이는 존슨앤존슨측이 20년 전부터 발암물질로 지목된 물질을 제품에 사용한 것을 소비자에게 알리지 않아서였다.

옥시 역시 살균제에 유해물질이 포함됨을 알고도 이를 방조했다는 의혹과 대학을 통해 가습기 살균제의 유해성 보고서를 조작한 혐의를 받고 있다. 옥시는 검찰 조사에서도 증거인멸을 시도했다.

이러한 옥시가 미국과 비교했을 때 턱없이 낮은 배상금액을 피해자 측에 먼저 제시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제조물에 대한 징벌적손해배상제도는 아직 도입돼 있지 않아서다.

◇ 옥시 은폐 행위, 존슨앤존슨만큼 '악질적'

징벌적손해배상은 하도급법 등에 따른 중소기업의 피해보전과 인터넷에서의 소비자 보호를 위해서만 시행되고 있다. '하도급거래 공정화법률'과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서 징벌적 의미의 손해배상을 규정하고 있지만 적용사례가 극히 드물뿐 아니라 배상금액도 실손해액의 2~3배 수준에 그치고 있다.

옥시가 징벌적손해배상에 적용되지 않는 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처벌을 경감받고자 피해자들과 합의를 시도하려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창현 교수는 "옥시가 피해자들과 합의를 통해 형사책임을 감면받고자 하려는 것"이라며 "이 때문에 국내 법원의 사망 시 배상기준 1억원보다 높게 책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법원에서의 1억원 기준이 낮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는데 교통사고 등 빈번하게 발생하는 사건을 일관성 있게 처리하려는 취지이기 때문에 옥시 사건은 예외적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허윤 법무법인 예율 변호사는 "영유아에 대한 10억원 배상금도 살아 있는 영유아라면 현행 사법제도를 적용하더라도 그만큼 책정될 수 있다"며 "옥시가 현재 제시한 배상금액으로 비판을 털어낸다면 사전적 예방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백재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징벌적 손해배상을 기업과 소비자로 확대한 '제조물 책임법 개정안'을 2013년 10월 대표 발의했지만 법안의 파급력과 기업 등 관계자들의 이견 등을 이유로 지금까지 국회에 계류돼 있다.

최근 박영선 의원은 징벌적 배상금을 피해액의 최대 3배로 정한 징벌적 배상법 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제정안은 '기업이 타인의 권리나 이익을 침해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결과의 발생을 용인할 경우 징벌적 배상책임을 부과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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