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불이 난 다세대주택에 뛰어들어 일일이 초인종을 눌려 입주민들을 대피시켰지만 정작 자신은 유독가스에 중독돼 사망한 '초인종 의인'을 숨지게 한 방화범이 항소심에서도 실형을 선고받았다.
서울고법 형사5부(재판장 윤준 부장판사)는 6일 다세대주택에 불을 질러 20대 남성을 숨지게 한 혐의(현주건조물방화치사 등)로 구속기소된 김모(26·중국동포)씨에 대한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원심대로 징역 10년을 선고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범행으로 소중한 생명이 침해됐고 다치거나 재산상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도 있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회복조치를 취하지 않은 점 및 원심의 형량이 양형기준 내에 부합하는 범위인 점 등을 모두 감안하면 원심의 형은 적정하고 너무 무겁거나 가볍지 않다"고 판시했다.
김씨는 지난해 9월9일 오전 3시쯤 연인관계에 있던 A씨가 헤어질 것을 요구하며 서울 마포구에 있는 다세대주택으로 주거지를 옮기고 집에 찾아가도 집을 비운 채 만나주지 않자 홧김에 불을 질러 2명의 사상자를 내고 1억원 가량의 재산피해를 발생시킨 혐의(현주건조물방화치사 등)로 재판에 넘겨져 1심에서 징역 10년이 선고됐다.
당시 김씨가 3층에 있던 A씨의 방 침대에 낸 불은 벽면을 타고 건물 위쪽으로 번졌고 이에 4층에 거주하던 심모씨(30)가 불길을 피해 건물 밖으로 뛰어내려 전치4주의 골절상을 입었으며 잠을 자고 있던 입주자들을 깨워 대피시켰던 안치범(당시 28)씨가 연기를 흡입해 의식불명으로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패혈성 쇼크로 사망했다.
사고 당일 안씨는 화재를 피해 1층까지 내려왔으나 미처 피하지 못한 주민들을 대피시키기 위해 불이 난 건물로 다시 뛰어 올라갔고 옥상으로 향하는 5층 계단에서 쓰러진 채 발견된 안씨의 손에는 현관문을 두드리다가 생긴 것으로 보이는 새까만 화상 자국이 남아 있었다.
김씨는 법정에서 이미 화재를 피해 건물 밖으로 나왔다가 다시 들어간 안씨의 죽음에 자신의 행동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지 않았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여러 주민이 거주하는 건물에서 새벽시간에 화재가 발생하면 잠든 주민들을 구하기 위해 내부로 들어가 화재 사실을 알리는 것은 일반인의 상식에 비추어 예견될 수 있는 사항"이라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