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찾은 세드릭 오 프랑스 디지털부 장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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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기술패권 경쟁에 유럽 국가들도 한국과 비슷한 처지
랜섬웨어 등 막으려면 사이버 분야에도 ‘제네바 협약’ 필요”
‘신냉전’ 수식어가 따라붙는 미국과 중국의 전략 경쟁은 기술 표준과 핵심 산업 공급망 등 첨단기술 분야에서 가장 첨예하게 전개되고 있다. 특히 조 바이든 미국 정부가 동맹과 우방국을 규합해 대중국 공동 전선 구축을 시도하면서 미·중 사이에서 선택의 기로에 내몰리는 나라들이 늘고 있다. 한국은 물론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국가들도 예외는 아니다. 방한 중인 세드릭 오 프랑스 디지털부 장관(39)은 지난 17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프랑스와 유럽 국가들도 한국과 비슷한 처지”라면서도 “프랑스는 프랑스만의 길을 내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프랑스의 길’이란 기술 분야 혁신을 통해 자립을 추구하는 동시에 국제 공조를 모색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오 장관은 한국과 프랑스의 유사점으로 “미국과 전통적인 동맹이고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저울질하지 않는다”는 점을 꼽았다. 그러면서도 “프랑스는 5G 통신 등 기술 분야에서 만큼은 스스로 규칙을 만들어 독립성을 보장하려 한다”며 “기술이 국가 간 상호호환적이라고 해도 미·중 경쟁에서 기술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미·중 패권 다툼에 휩쓸리지 않고 자강을 추구하려는 전략은 프랑스만이 아니라 유럽 공통의 사고방식이라고 오 장관은 전했다. 그는 “유럽은 미국과 특별한 관계이지만 미국의 이해관계와 완전히 동조하는 것은 원치 않는다”며 “중국은 유럽에 중요한 시장이다. 우리는 순진하지 않다. 다만 스스로의 길을 갈 준비가 되어 있다”고 강조했다.
오 장관은 한국과 프랑스가 과거부터 긴밀하게 협력해온 철도, 항공. 원자력 등은 물론이고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인공지능, 스타트업 분야에서도 협력을 확대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러면서 “두 나라 모두 미·중 갈등에서 자기만의 길을 모색하는 나라”라고 말했다.
오 장관의 이번 방한은 감염병, 사이버 공격, 신기술 악용 등 새로운 안보위협에 대한 국제적 논의의 장을 마련한다는 취지로 외교부가 주최한 제1차 세계신안보포럼 참석을 계기로 이뤄졌다. 그는 “다자적 노력이 충돌을 막을 유일한 방법”이라며 “한국을 포함해 입장이 비슷한 나라들과 국제 프레임워크를 만들기 위한 논의를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전통적인 전쟁에 관한 국제조약은 있지만 사이버 전쟁에서는 아무런 규범이 없다”며 사이버 안보 분야의 ‘제네바 협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시 민간인 보호 정신을 담은 제네바 협약처럼 랜섬웨어 등 사이버상 공격으로 인한 민간인 피해를 막으려면 국제협력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그는 2018년 말 프랑스가 주도하고 최근 미국이 가입 의사를 밝힌 ‘사이버공간에서의 신뢰 및 보안을 위한 파리 요구’(Paris Call)가 사이버 분야 국제협약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기대를 내비쳤다. 또 “중국과 러시아도 규칙 없는 세상에 살고 싶지는 않을 것”이라며 궁극적으로는 중국, 러시아도 국제 논의에 참여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정치 입문 전 컨설턴트로도 일한 오 장관은 인터뷰에서 여러 차례 ‘민주적 국가’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인터넷이 충분히 규제되지 않고 있는 것이 문제다. 서구 국가들이 겪는 민주주의 위기의 원인도 그 때문”이라고 말했다.
프랑스는 지난해부터 구글, 페이스북 등을 대상으로 디지털세를 부과하는 등 거대 정보기술(IT) 기업의 불공정 행위를 제어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디지털세 도입에서 얻은 교훈에 대해 묻자 그는 “규제는 필요하지만 스스로 작동하지 않는다. 디지털 세계의 특수성을 이해해 점진적으로 규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공공의 이익은 플랫폼 기업이나 민간 행위자들의 핵심 사업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 민주적 국가가 최종 권한을 갖는다는 점을 업계에 항상 상기시켜야 하는 까닭”이라고 말했다.
재불 한국인 과학자 오영석 전 카이스트 교수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오 장관의 가족사와 성장 배경은 국내에서도 적잖은 화제가 됐다. 그는 “나는 프랑스인이지만 어떤 부분에선 아버지에 의해 한국인 소년처럼 양육됐다”며 “특히 한국 어린이들이 교육 때문에 받는 고통을 나도 겪었다”며 웃음을 보였다. 1988년 서울 올림픽 당시 프랑스인들 상당수가 한국이 지도상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던 것에 비해 “지금은 세계 속 한국의 이미지가 너무나 달라졌다”며 “한국의 강력한 소프트파워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2017년 프랑스 대선을 앞두고 에마뉘엘 마크롱 현 대통령과 함께 현 집권 여당인 ‘앙마르슈’를 창당한 오 장관은 프랑스 정계를 바꿔놓은 젊은 물결의 대표 주자이기도 하다. 오 장관의 여동생은 하원의원을 지낸 델핀 오 유엔 세대평등포럼 사무총장이다. 마크롱 정부의 정치 실험이 계속될지는 내년 4월 대선에서 판가름난다.
그는 “마크롱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대선 출마를 선언하지 않은 상황에서 미래를 말하기 어렵다”면서도 “지난 5년간 우리의 노력으로 프랑스가 다시 제 궤도에 올라섰다. 이전에 그 누구도 하지 못했던 일이다. 마크롱이 후보가 된다면 최선을 다해 그를 도울 것”이라고 했다. -김유진 기자-
출처:경향신문
https://www.khan.co.kr/world/world-general/article/202111182149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