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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칼럼

이팝꽃, 이 봄에 꽃 피거든 눈으로 나마 이팝(쌀밥) 실컷 먹으라고...

<논설위원  박 기 동>

 

 

 

♥서러운 이팝꽃♥

 

아이는 어미젖을 빤다.

빨아도 빨아도 빈 젖.

어미가 먹은 게 없으니 젖이 나올 리 없다.

보채던 울음이 희미해진다.

젖먹이 얼굴에 한 방울 떨어지는 어미 눈물.

지친 아이는 더 이상 울지 못한다.

끝내 고개가 슬며시 뒤로 꺾인다.

눈도 감지 못한다.

 

감을 힘도 없다.

보릿고개 넘는 해는 그래도 길다.

아비는 긴 한숨으로 지게를 진다.

무명적삼에 돌돌 말린 아이. 가볍다.

진 듯 만 듯.

빈 젖만 빨다 저세상 간 아이.

꺼이꺼이 눈물을 앞세워 사립을 나선다.

그림자가 불쌍하다며 앞산까지 따라온다.

차마 뒤따르지 못한 어미는 댓돌에 맥없이 쓰러진다.

아직 냉기가 올라오는 땅을 판다.

깊이깊이 판다.

작은 몸 뉘일 곳 얕아도 그만이지만

덥지 말고 춥지 말라고 깊이깊이 판다.

옥황상제 만나러 아장아장 가는 길

조금이라도 짧아지라고 파고 또 판다.

제물은 눈물 몇 방울.

굶어 죽은 며느리 혼,

소쩍새가 목청껏 대신 울어 준다.

아비는 자그마한 무덤가에 나무 하나 심는다.

이팝나무.

이 봄에 꽃 피거든

눈으로 나마 이팝(쌀밥) 실컷 먹으라고,

더 이상 배고프지 말라고,

밤새 함박눈이 소복소복 내린 듯 하얀 꽃무리,

이팝 보며 활짝 웃으라고.

어둠이 지게를 따라 산 밑까지 내려오면

아비는 그때야 이름도 없는 아이를 외마디로 부른다.

소쩍새는 목이 메여 더 이상 울어 주지도 못한다.

이팝꽃이 한창이다.

벚꽃이 지기 바쁘게 찾아온 이팝.

오죽이나 배고팠으면 이팝이라 했을까.

그것도 보릿고개에 맞춰 펴 주었으니.

배고픈 백성들 눈에는 쌀밥으로 보일 수밖에.

굶어 죽은 영혼이 이 이팝꽃이라도 보고

위로 받으라고 조상들은 심고 또 심었다.

입하(立夏)에 피는 꽃이라 했는데 이번 주말이 입하다.

이팝꽃 지는 게 못내 서러운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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